상단서브이미지

가난했기에 행복 하였네

2018.12.06 16:10

가을언덕 조회 수:77

< 가난했기에 행복 하였네 >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때의 일을 ...

우리 집은 서울변두리 산동네, 주인집에 딸린 단칸 셋방.

매미가 지치게 울던 여름날, 아빠가 땀에 흠뻑 젖어 퇴근을 하시면 엄마는 세숫대야에 시원한 물을 받아 들고 오셔서는 툇마루에 걸터앉은 아빠의 땀내 나는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무척 더러웠을 그 발을 무릎 꿇고 씻기시던 엄마의 모습은 마치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발을 닦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날 동네 형들을 따라 마을 밖까지 나갔다가 차들이 달리는 도로 한쪽에서 청소를 하고 계신 아빠를 보고서야 우리 아빠가 길거리 청소부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느 여름날 큰 다라를 머리에 이고 해물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 아주머니가 골목 한켠에 물건을 풀었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멍게와 해삼을 보았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들이 각자 사가지고 자리를 떳지만 엄마는 한참을 머뭇거리고 망설이던 끝에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려서 멍게를 조금 샀습니다.

저녁 밥상에 멍게가 올라왔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먹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자식이 먼저였던 엄마는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아빠 앞에 놓인 멍게 한 접시, 하지만 아빠도 먹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입에 한 점 들어가고 난 후에야 아빠는 드셨습니다.

추운 겨울밤, 머리맡에 물을 떠놓고 자면 다음날 꽁꽁 얼어 버릴 만큼 방에는 외풍이 들이쳤기에 엄마는 누나와 나, 동생에게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양말에 장갑까지 끼운후에야 어린 3남매를 재우셨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엄마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연탄을 두 장, 혹은 네 장씩 외상으로 가져오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때가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 때라는 것을...

 

나는 지금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너무 넓은 집, 한겨울 속옷만 입고도 더워할 만큼 따듯한 집.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아도 멍게를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고, 한여름 에어컨 앞에 앉아 냉방병이 걸릴 만큼 소유는 넉넉하지만 나는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제 내 나이 50.

너무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소유가 많아질수록 불행해지고

성공할수록 더욱 걱정거리는 많아 진다는 것을.

왜 하나님께서 나의 소유를 제한하셨는지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행한 소유를 구하기보다 행복한 가난의 불편을 사모하느니.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 집이 조금씩 형편이 나아 지면서 부모님은 자주 부부 싸움을 하곤 하셨습니다.

그 여름, 남편 몸보신 하라고 돈을 꾸어 멍게 한줌 샀던 그날의 가난을 기억했던들,

냄새나는 발을 씻기던 아내의 헌신을 기억했던들,

달동네 추운 겨울, 서로를 부둥켜안고 부엉이처럼 잠들던 그 밤의 몸서리를 기억했던들,

그런 다툼은 없었을 것을...

 

성탄의 계절입니다.

올해도 교회에서는 성탄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작은 박스하나에 세상의 모든 가난을 다 담을수야  없겠지만 그 만큼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머지않아 성탄절이 오면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가난과 아픔이 하얗게 덮이게.


와~우리 교회의 모든 가족들위에 성탄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8.12.6)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