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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무신과 찐 계란’>

 

유영배안수집사

아버지!

철부지 어린 아들이 두 아이의 아비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이별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음성은 저에게 생생하게 들립니다. 순간순간 아버지를 향한 저의 그리움 속엔 한 없이 부족한 아들이기에 기억해야하는 죄책감인가 봅니다. 꿈에서라도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뵙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 사랑 이제야 알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비오는 날이면 염전의 소금을 망칠까 싶어 걱정! 고된 노동으로 검게 그을리신 아버지!

당신의 비와 땀에 젖은 시큼한 냄새가 울컥! 하고 사무칩니다.

"아부지! 냄새나요 좀 씻어요..!" 짜증 섞인 아들의 말에 미소 띤 얼굴로

"알았네 교장"(아버지는 나를 교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충 국수 한 그릇 말아 드시고 다시 염전으로 향하시던 아버지!

애정 가득담은 인자한 그 눈빛 외면해서 죄송합니다.

밤으로 낮으로 일밖에 모르시던 불쌍한 아버지!

수고 하신다는 말 한마디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식사시간에 생선이라도 상에 올라오면 생선은 뼈와 머리가 가장 맛있다며

가시, 머리만 드시고 사랑하는 아내와 작은 아들들에게 살코기만 나눠 주시던 아버지!

제가 아비가 되어서야 생선은 뼈와 머리가 가장 맛있다는 아버지 말씀이 거짓말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먹을게요. 아빠도 좀 드세요.” 두 딸들이 투정을 부립니다.

옛날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조용히 웃으셨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웃어지지 않습니다.

 

초등 5학년 겨울 방학, 난생 처음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목포에 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목포 선착장 근처에서 건네어 주시던 따끈한 콩물, 빈대떡 참 맛있었습니다.

유달산 뒷골목,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 언덕에서 식당 음식물을 모아 와서 물에 씻고, 종이 박스로 불을 지피는 이해하기 힘든 가난속의 그들을 보게 하시곤

 

교장 이 환경을 잊지 말아요.

세상 살면서 위를 바라보면 낙심이 보이고, 아래를 바라보면 희망이 보이는 법이니까 물질은 나누며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거여~.“

그새 언제 또 준비 하셨는지

5백원짜리 지폐를 한 집 한 집, 열서너 집을 돌며 한 장씩 건네어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꾸벅 꾸벅 인사하며 매년 감사하다며 아버지를 익숙하게 알아보며 받아 가는 그들을 봤습니다. 넓디넓은 농토 다 버리고 피난 내려 오셔서 언제 부터 가족 모르게 선을 행하고 계셨던 건지,,

아까운 돈 다 나눠주고 다닌다고 짜증부리는 아들에게

"교장 뭐가 걱정인가 교장은 내가 있고,

훗날 좋은 색시 만나 색시 닮은 아이들이랑 어려움 없이 살 건데,,

 

어린 두 남매만 데리고 정든 정착지를 떠나 이사 하던 날, 아버지의 흰 고무신에 눈이 파고들어 질퍽질퍽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아부지는 신발 하나 없어서 겨울에 고무신 신으요?"

아버지 창피 하다고 퉁명스레 욱하며 또 화를 냈습니다.

"교장, 미안하네. 신발이 이삿짐 속에 있으니 나중에 신음새"

아버지!

신발이 흰 고무신 하나 밖에 없었던 거지요?..

 

얼마쯤 손수레로 가시다가 조그만 가게에 들러 찐 계란 3개를 사서 건네어 주시곤

"먹고 있어요. 변소에 다녀 올테니"

다녀오신 아버지, 한개 남은 계란 건네 드리니 소화가 안 된다고 마저 먹으라고 하시기에 철없는 아들은 그 귀하고 귀한 찐 계란 한개 마저 처먹었습니다. 아침, 점심도 굶은 오후 시간인데 얼마나 배가 고프셨습니까? 눈길에 흰 고무신 신고 질퍽! 질퍽! 걸으시던 아버지모습과 마저 먹어버린 계란 한 개는 평생 저를 힘들게 합니다.

손수레에 가득 이삿짐 싣고 힘겹게 끌고 가시는 아버지 모습 창피해서 저는 뒤에서 멀찍이 따라 갔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런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리운 내 아버지!

 

피난민의 설움과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묵묵히 가장의 위치에서 희생의 몫을 다하신 그 모습. 제가 아비가 되고 보니 아버지는 세상 아버지의 본이 되는 귀하고 훌륭한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온유하고 다정한 모습을 유산으로 남기신 아버지를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막둥이 내 아들! 교장 선생님 같은 성품 가지라며 끔찍이도 아껴 주셨는데..,

그 사랑, 그 믿음 이제야 알았습니다.

 

해군 시절 아버지가 피난 내려오실 때 타셨다는 수송선 번호 발견하고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색시와 결혼하는 날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 하셨던 손녀들 낳을 때마다 울었습니다.

대소변 감당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요양원 보내드릴 때 울었습니다.

큰 딸 피아노연주회에 가서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큰딸을 보며 울었습니다.

울 아빠 세계여행 시켜줄려고 꿈을 외교관으로 했다는 작은딸의 말에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 하시던 가락국수, 콩국수 먹을 때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다 큰 아들은 목이 메여옵니다.

어디서든 하얀 천일염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바쁘며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

곁에 안 계신 아버지가 가장 먼저생각나고, 그리고 늘 그립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보다 부족한 아비라는 열등감 속에서 자식들을 대하곤 합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신 아버지,

저는 감히 아버지 같은 아비이고 싶습니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

 

                                                                                                                                        201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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